안녕하세요,

오늘 리뷰할 책은 고병철님의 '스타트업 심사역의 회상'입니다.

 

고병철님이 심사역으로 일하시면서 기록한 내용을 브런치에 연재하셨고, 그것을 모아서 한권으로 책으로 발간하셨다고 하네요.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발췌해보려고 합니다.

심사역으로서 커리어를 생각하고 계시거나, 현재 심사역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강력추천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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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한두 면을 보고, 보지 못한 부분은 내 맘대로 상상한다. 착각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살펴도 살펴도 다 볼 수가 없다.

좋게 보면 좋아 보인다.

투자하지 못해 조바심이 난다.

막상 투자하면 그제야 제대로 보인다.

 

불가근불가원. 투자했어도 한번더 살펴보자.

오래 갈 파트너인지, 일회용 만남인지, 그때부터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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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지만 선을 벗어나지는 말아야 한다.

뻔한 무리수는 던지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다 손실이다.

성실한 제안은, 비록 이번에는 어렵다 해도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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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돌고 돈다.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듯 다른 위치에서 또 만난다.

세상은 좁다. 교만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으로 돈다.

세상도 바뀌었다. 작은 일조차 클라우드에 쌓이고 쌓인다. 오랫동안 기억된다.

정보 불균형은 옛말이다.

세월을 이기는 얄팍한 수는 없다.

좀 변했다 해도,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 오래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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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역은 투자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것을 "으레 그런거예요"라고 대충 얼버무리면, 기억이 옅어진 후 "어라? 이건 뭐지"로 바뀌고, 담당이 바뀌면 해석도 달라진다.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투자 심사역이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회에서는 투자자를 '전문가' 또 '강자'로 본다. 아무도 투자자의 실수와 무지를 안타까워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웃는다.

'전문가'는 스스로의 '전문성'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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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업계도 비슷하다.

내부적으로 절차가 남아 있고, 결과가 불확실한데도, 심사역은 자신만만하다. 마치 확정된 듯 이야기한다.

다른 투자자를 배제하라고도 한다.

돈이 말라가는 벤처한테 그런 말은 희망인데, 찜찜하고 불안하다. 그저 믿고 싶다.

그럴수록 더, 정확한 상황을, 자신의 역할과 범위를 솔직히 공유해야 한다. 

심사역 본인에게도 그게 좋다.

오늘의 큰소리가 내일은 심사역을 옥죈다.

심사역은 성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직업이다. 하루 반짝 성과를 누리고 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사이 평판은 쌓이고, 내가 한 말에 언젠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치열한 경쟁은 속도를 요구하지만, 오래 할 비즈니스라면 신뢰성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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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서로서로 익숙해지고, 상대방으로부터 조그마한 것들은 양해와 배려를 받는다.

처음에는 미안하고 고마워 한다. 하지만 반복되면 그런 감정은 옅어진다.

어느덧 당연하게, 관행으로 익숙해져 버린다.

그러다가 원칙대로 하자고 하는 경우를 만나면, 큰 사달이 난다.

스스로 경계하고, 늘 제자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슬부슬 가랑비에 뼛속까지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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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렇다고 짧다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나중에 정의되지 않은 부분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스타트업한테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잡아먹는다.

가뜩이나 이해 관계 조정,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 힘이 든다.

 

계약서, 정독해야 한다. 

심사역은 특히, 구절구절 그 사연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편집할 능력이 생긴다.

아니면 무식한 "갑", 무대뽀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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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는 쪽은 투자금이 선심쓰듯 투자할 공돈이 아니고,

투자 받는 쪽은 투자금이 대가 없는 눈먼 돈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어리버리 그 시절에 투자를 별로 못했기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지금 보면 무모하게, 하란다고 투자했던 많은 동료들이, 자의반 타의반 업계를 떠났다.

업체가 어려워지면 지켜보는 담당자도 괴롭다.

(사실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힘들다. 부실을 다 감내하고 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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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은 잔머리와 혼동될 때가 있다.

잔머리는 자체로 완성된 작은 일이다. 반복되지도 누적되지도 않는다. 단기적이다.

디테일도 작은 부분이다. 작아서 자랑거리도 아니라서, 혹 뒤풀이에서나 말한다.

하지만, 그게 모여 일을 '완성'시킨다.

중요하다. 결과가 쪽박 아니면 대박인 투자에서는 무시될 수 없다.

 

디테일은 실전과 시행착오에서 배운다.

체험에서 나온 감각, 경험한 행동은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할 수도, 납득시킬 수도 없다.

행동하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납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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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나에게 귀를 열어줄까?

신뢰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내가 찾은 대답은, 솔직함이다. 과장되지 않는 담백함이다.

나도 내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상이나 가정보다는 현재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작은 의미를 나눌 때 신뢰도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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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면, 원칙, 관계라는 이름으로, 떄로는 으레, 막무가내로 요청한다.

일단 다 달라고 한다. 안 볼지라도. 의미를 모를지라도.

그러면 업체의 누군가는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많은 경우, 역시 이쪽 비전문가인 사장이 직접 한다.

핵심 업무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기고, 휴식 재충전할 시간이 줄어든다.

갑질이다.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갑질은 갑질이다. 모두 손해다.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면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핵심에 집중할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시간은 벤처가 대기업과 유일하게 공평하게 가진 리소스다.

더 값지게 쓰여야 한다.

 

우선 내 업무부터 이해하자.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 유연성이 생긴다.

잘 알면 겸손해진다.

자식보다 무지가 더 자신감을 준다.

모르면 맹목적이다.

무모한 자신감이다.

자질을 갖추자.

또 전문가의 책임은 더 엄중하다는 걸 기억하자.

외부 네트워킹만큼 내부 역량 강화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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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역들은 이직이 잦다.

투자한 업체 관리를 누군가 하겠지만, 일이 중대하면 떠난 당사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조작된다.

그래서 정확한 사실과 자료를 갖추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해야 한다.

심사역의 '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의도'가 될 수 있다.

화려한 투자 실적이, 몇 년 뒤 수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심사역이 투자 협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심사역과 사장님, 가정이 서로 틀리다.

투자 전 기업 가치인지, 투자 후인지.

스톡옵션 희석분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

그냥 투심위라도 했으면 낭패다.

바꾸기도 어렵다. 가정을 확인하자. 그게 탄탄한 기본기다.

그래야 '척하면 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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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라는 말 자체가 의마 없는 곳이 있다.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안 할 건지, 이것만 중요한.

벤처 투자가 그렇다. 초기 투자면 당연하다.

뼈가 부러질 건데, 반창고가 무슨 소용 있나.

"쫄리면 뒈지시던가" 

너무 쫄리면 안 해야지.

절대 안전한 건, 투자를 안 하는 거다.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방법은 없다.

그냥 깔끔하게, 사업성을 더 잘 평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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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역의 3월, 이사회로, 주총으로 일정이 꽉 찬다.

이래저래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해야만 하는 이런 일들을 일 같지 않게 해내는 과정, 심사역에게 3월이 그렇다.

다양한 케이스, 시행 착오는 대응 능력을 높인다.

넓게도 보고, 깊게도 보고, 빠르게 숙달된다.

진짜 내 경험, 산 지식이 쌓인다.

심사역에게 3월은 단기 속성반이다.

중요한 시기에, 하찮아 보이는 것에 발목 잡히지 않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정보란 것들이 널려 있고 선무당이 많은 시대에, 그건 진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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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가 나오지. 너는 그냥 넘어가지. 네가 쓴 거니까. 다 안단 말이야.

읽는 사람은 그런 게 몇 번 나오면 집중 안돼. 거슬리거든.

앞뒤 숫자가 안 맞지. 대충 쓴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어.

읽기가 싫어, 믿을 수 없거든.

 

설명만 잘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지.

먼저 읽어 본 사람은 인상이 나빠져 버려. 그걸 바꾸려면 노력이 더 들어.

이왕 해야 하는 거, 잘 쓰잔 말이야. 허투루 쓰잖아? 그럼 좀 지나 봐, 너도 못 알아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긴 심사역은 남이 쓴 보고서를 읽고, 자기 심사 보고서를 쓴다.

간단하게든, 길게든, 빠지지 않는 일과다. 아는 만큼 잘 쓴다.

제대로 쓴 보고서는 시간이 지나도 이해된다.

리뷰할 수 있고, 뭐가 모자랐는지 반성할 수 있다. 성장의 디딤돌이다.

나중에 자기도 알아볼 수 없는 보고서, 리뷰가 안 된다.

반성도 없고 발전도 없다. 그냥 쓰레기를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해야 할 일, 이왕이면 잘 하자.

기본을 잘 다져야 기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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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도 마찬가지다.

대박과 쪽박은 실과 바늘이다.

똑같은 패턴으로 두 번 성공할 수 없다. 같은 방법으로 시도했다간 앞선 성공의 과실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세상의 틀이 변하지 않는다면 '위험'투자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다.

VC라는 산업도, 심사역이란 직업도 없을 거다.

틀의 변화.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어, 가서 보고, 읽고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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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시장 생태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엔 자본, 인력이 부족합니다.

시장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경쟁력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동영상 강의 시장도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에 성공했습니다. 콘텐츠 ㅇ버체가 인프라를 깐 게 아닙니다.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차별화되고 경쟁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핵심에 집중하고 끝까지 버텨내야 합니다.

그럼 운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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